새로운 길을 개척해 가는 신학도들에게
- 박태환 교수 -
신학을 시작할 때에 믿음이 충만한 상태에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막9:23절)라는 말씀에 아멘하게 된다. 그러나 믿음으로 시작한 신학도들이 점점 현실세계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믿음으로 시작한 신학생 시절과 이어서 닥쳐오는 사역의 문제들 앞에서 믿음과 현실은 많은 충돌을 일으켜 혼란스럽기까지 한다.
누구나 위대한 사역을 꿈꾸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그리고 기도한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가 목회하는 현실은 우리가 꿈 꾼대로, 기도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서 신학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한권 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책이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란 책은 오트 프로방스 지방 작가 '장 지오노'가 1953년 발표하여 13개 언어로 번역이 되어 오늘날까지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는 책이다.
1913년 해발 1,200M ~1,300M 프랑스의 알프스산지의 프로방스 고산지대를 도보 여행 중이던 작가가 마실 물이 떨어져 물을 찾았지만 폐허로 변해버린 마을 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무려 다섯 시간이나 물을 찾아 헤매다 운 좋게 양치기 남자를 만나게 된다.
물 한 병을 얻어 마신 그는 돌로 만들어 제대로 된 양치기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쉰다섯 살의 엘제아르 부피에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부인이 차례로 죽자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떡갈나무 숲 속에 자리 잡은 마을에는 숯을 만들어 파는 나무꾼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견디기 어려운 날씨 속에 탈출구를 찾지 못하던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이기심을 채우지 못해 대소사 모든 걸 놓고 경쟁하며 갈등하다 자살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정신병마저 유행하여 지금은 마을들이 폐허로 변했습니다.
그는 나무가 부족하여 땅이 죽어가고 주민들이 포악해진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땅은 아니지만 산 곳곳에 너도밤나무뿐 아니라 떡갈나무 씨를 뿌리고 가꾼다.
저녁 식사 후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는 도토리자루를 탁자 위에 쏟아놓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골라 자그마한 실금조차 없이 가장 완벽하게 굵은 도토리 100개를 모아 놓고 잠자리에 든다.
이튿날 평상시 들던 지팡이 대신 엄지손가락만한 쇠막대기를 들고 가던 엘제아르 부피에는 쇠막대기로 구멍을 파고 도토리를 아주 정성스럽게 심기 시작한다. 3년 전부터 도토리를 심기 시작한 그는 10만개의 도토리를 심어 10만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5년 동안 전쟁터에서 싸웠던 작가가 전쟁이 끝난 후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강한 욕망으로 황무지 땅에서 나무를 심던 양치지 엘제아르 부피에를 찾아 나선다.
물론 20대 젊은 작가의 눈에는 괘씸하게도(?) 50대란 늙은이에 불과하며 죽는 것 말고는 별로 할일이 없는 사람들로 보일 뿐이라 혹시 죽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도 해보았지만 작가의 의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오히려 원기 왕성하게 생활하며 어린양들이 나무들을 헤치기 때문에 양은 4마리만 남기고 100여 통의 벌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전과 다름없이 계속 나무를 심고 있었다.
1910년도 처음 심었던 떡갈나무는 10살이 되어 어른 키만큼 자라 떡갈나무 숲을 11KM나 이루었다.
또한 작가가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던 시기인 1915년에 심었던 자작나무도 젊은이처럼 부드럽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다.
황무지 땅에 새로운 나무숲이 생성되자 새들이 돌아오고 개울물이 흐르지만 그것은 너무나 천천히 일어났기에 사람들은 습관처럼 여겼다. 특히나 1933년 산림 감시원은 이 숲을 보고 깜짝 놀라 "숲이 혼자 저절로 자란 것은 처음 본다"며 '천연'숲에 자라는 나무가 위태로울지 모르니 집 밖에서 불을 피우지 말라고 엘제아르 부피에 에게 경고하는 주객전도의 과오를 저지른다. 하지만, 순진한 산림감시원의 경고가 있거나말거나 엘제아르 부피에는 일흔다섯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12KM나 떨어진 곳으로 너도밤나무를 심으로 다니곤 했다.
1913년 작가가 프로방스 고산지대를 도보 여행 중 만나 베르공 마을에는 불과 열 집에서 열두 집 정도가 있었다.
마을 주민 또한 단 세 명만이 남아 서로 미워하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원시인에 가까운 삶을 살았지만 나무숲이 생겨나자 공기부터가 달라졌다.
향긋한 공기와 맑은 샘물이 솟아나자 마을로 돌아온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생겨나 쐐기풀로 뒤덮은 집을 헐고 새로 집을 지어 아담하고 깨끗한 농가가 생겨났다.
옛 주민과 새로 이주해온 사람이 합쳐 1만 명이 넘는 전원의 마을로 변해 있었습니다. 엘제아르 부피에 오직 한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힘만으로 폐허 황무지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룩한 것이다.
1947년 엘제아르 부피에는 89세의 나이로 바농 요양소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작은 활동이 얼마나 큰 역사를 일으키는지 볼 수 있다.
우리 신학도들이 남이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나무를 심는 사람처럼 확고한 자기 철학과 작은 실천을 통해 사람들이 살만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하잘것없는 일처럼 보였던 작은 실천과 꾸준함이 이런 성과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것만 꿈꾸고, 큰 것에만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름을 내고, 큰 사역을 하고 해야 성공한 것처럼 인식되는 시대이기에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짜 위대한 사역은 엘제아르 부피에의 오직 한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힘만으로 폐허 황무지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룩한 것처럼 우리의 사역을 한번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정립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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