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자신의 생명보다 교회를 더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교회를 통해 우리를 축복하시고자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교회를 직접 통치하시고, 성령의 권능으로 지키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교회 위에 엄청난 영적 권세를 주셨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회를 대적하는 자를 주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를 천 배 만 배로 축복하십니다 .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만큼 축복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모임입니다. 교회는『신성과 권위』(divinity & dignity)를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언제부터인가 영적 권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영권을 상실하면 축복권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초자연적인 영성(Supernatural Spirituality)을 필요로 합니다.그 어느 때보다도 영권 회복과 새로운 영성 향상이 필요합니다. 교회와 교인들의 영성이 향상될수록 세상을 향한 영적 권세(Spiritual Authority)가 높아집니다 영 적 권세가 높아지는 만큼 축복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신자의 영성이 높아지는 만큼 하늘 문이 활짝 열립니다. 교회의 영권과 축복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1.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표적과 기사는 성령이 우리의 신앙을 한 단계 높여주기 위한 방법입니다. 엎그레이드.. 영적 GNP를 높여주시는 성령님 우리에게,. GNP가 높여 주는 것은 축복 입니다. 재정적 어러움 떼문에. 택시운전,20-30명 성도로는 성도다운 성도가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표적과 기사를 먹고사는 종교니다.. 이 기사와.표적을 먹을 생각은 않고 세상의ㅡ것을 먹을려고 하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것입니다. (행 2:22)「…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기독교만이 가진 매력이 무엇입니까? 기사와 표적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2막 2장에 나오는 유명한 말
장미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도 변함없는 향기를 내뿜는다. 기독교는 시대가 바뀌고,, 패려담에 변화가 온다 할지라도.. 기독교만이 가진 독톡한 매력인 표적과 기사는 .. 변함이 없어야 하는것입니다.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은 믿음을 주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말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 창조의 하나님이심을 . 나타내는 수단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다. 너희는 내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영적권위의 수단인것입니다. 그래서 사탄도 자기를 믿게 하기 위하여 표적과 기사(이적)를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마 24:24, 막 13:22).
이 기적, 기사이라는 단어는 테라스(tevra")는뜻입니다. 그 뜻은 경이로운 것, 경탄스러운 것, 놀랄만한 것, 곧 깜짝 놀랄만한 충격을 받는 내용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런 경이로운 일들. 깜짝 놀랄만한 일들,. 충격적은 일들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각종이 질병이 나음을 입고. 병자들인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고 귀신들이 떠나가고. 가난과 저주가 사라지고.. 죄인들이 회개하는 .. 이런 표적과 기사들이 나타나야 만이 교회는 그 신성과 권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이런 예수의 영적인 매력을 찾아야 하는것입니다. 그 ㅡ방법은. 우리가 합심하여. 오순절 다락방처럼 .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위에는 이런 유가 나타나지 않습니다.이런 매력적인 것이 교회 뿐인가요.. 사랑하는 여려분들의 가정과 그 몸과 영혼에 충만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하 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이런 매력이 있습니까?
2> 한계점을 인정하라..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가진 자 마가복음 1:21~28 목사가 가진 권세가 아님니다. 어떤 특정인만이 가질수 있는 권세가 아님니다. 사람들은 온갖 문제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질병과 슬픔과 근심과 고통 등의 문제들을 만날 때, 그것을 풀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데 약을 가지고 풀어보려고 합니다. 여러 병을 해결하는 데는 여러 약이 필요합니다. 돈을 가지고 풀어보려고 하는 경제문제도 있고, 권력의 힘으로 풀어보려고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온갖 자연이나 여러 사회문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 국가, 여러 인류 문제들도 마찬가지로 그 분야에 고유한 문제풀이와 같은 열쇠가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열쇠로는 그 부분에 해당되는 부분의 문밖에 열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한계점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그 한계점앞에 우리는 좌절하고 낙심하고.. 주저 앉아버리고 마는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인 경제위기나. 자연적 피해와 고갈되어가는 , 자원은 그 한계점에 도달한것입니다. 더 이 상은 몸부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포기 하지않고.. 행운이 날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ㅡ것입니다.
예수는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마스터키가 됩니다. 예수는 모든 인류의 마스터키가 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반드시 그 해결책을 얻었던 것입니다. 왜 그의 교훈이 매력이 있었을까?
.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마모든 인류가 만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문을 열고 닫으시는 마스터키가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확실히 매력적인 존재가 됩니다 신앙에 이 매력적인 . 영적인 윤기나 ㅡ넘쳐나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한계점앞에.. 주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 가복음 1장 22절에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하였습니다. 기 서기관들이나 또 다른 데서 많이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조상들의 전승을 해석해 주는 자들이었습니다. 것마저도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온갖 위선과 유전으로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저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아니했던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마 23:3). 저들은 온갖 위선과 종교적 허식과 허례들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들을 생각하는데 모든 것을 낭비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사람들을 놓쳤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권세 있는 새 교훈으로 몰려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직접 오기도 하고, 또 하속들을 보내어서 예수의 교훈에 올무를 놓아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한계점앞에 예수를 찿지 않고. ㅡ비판과 부정으로 올무를 놓을 생각만 한것입니다.
주님의 매력중 하나는.. 역전하는 것입니다. 소위 뒤집어 놓는것입니다 그들이 더 이상 , 도전할수 없도록, 축복을 저주로만들어 버리시는 하나님 그러므로 우리는 한계점앞에 몸부림 치지 말고,. 예수의 이름을 불려야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자녀다운 권세로 영적전쟁에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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